일본식 용어가 아직도 적잖이 남아있는 한국 언론계 은어 중에 다른 언론 기사를 살짝 고쳐쓰는 행태를 가리키는 '우라까이(베껴쓰기)'란 말이 있다. 갑자기 이 말이 떠오른 건 앞서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를 정리할 때였다.
뉴욕타임스가 공들여 제작한 '넬슨 만델라 부음' 기사 시리즈보다 뉴욕타임스 기사를 인용해 쓴 허핑턴포스트 기사가 훨씬 더 많은 페이지뷰를 만드는 상황을 언급한 부분에서 '디지털 소매치기(digital pick-pocket)'란 말이 등장한다. 허핑턴포스트의 한 간부가 "이런 게 자랑스럽진 않지만 이게 너희가 해야할 경쟁이다. 너희는 (남들이) 너희 기사를 가지고 더 나은 제목을 붙이고 소셜미디어로 더 홍보해서 '디지털 소매치기' 하는 걸 막아야 한다"고 말한 부분이다.(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34쪽)
베껴쓴 기사에 당하지 않으려면 너희가 만든 오리지널 기사 홍보 제대로 해서 장사 잘 하라는 얘기였다.
뉴욕타임스가 공들여 제작한 '넬슨 만델라 부음' 기사 시리즈보다 뉴욕타임스 기사를 인용해 쓴 허핑턴포스트 기사가 훨씬 더 많은 페이지뷰를 만드는 상황을 언급한 부분에서 '디지털 소매치기(digital pick-pocket)'란 말이 등장한다. 허핑턴포스트의 한 간부가 "이런 게 자랑스럽진 않지만 이게 너희가 해야할 경쟁이다. 너희는 (남들이) 너희 기사를 가지고 더 나은 제목을 붙이고 소셜미디어로 더 홍보해서 '디지털 소매치기' 하는 걸 막아야 한다"고 말한 부분이다.(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34쪽)
베껴쓴 기사에 당하지 않으려면 너희가 만든 오리지널 기사 홍보 제대로 해서 장사 잘 하라는 얘기였다.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팀은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 우리가 더 적극 기사를 알리는 노력을 하는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 디지털 미디어에선 얼마나 깊이 있는 기사를 쓰는지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게 얼마나 마케팅을 잘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내부 구성원들에게 말하려 한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제 아무리 대단한 단독기사를 내놔도, 독자를 끌어들이는 홍보력과 기술력이 앞선 디지털 미디어가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이라고 인용하면서 훨씬 섹시한 제목을 붙이고, 요점을 정리해 베껴쓰면, 더 많은 독자가 읽는 기사는 '베껴쓴 기사'가 되기 때문에.
그런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2년 전 뉴욕타임스가 게재한 '고객정보' 관련 기사였다.
2012년 2월 16일, 뉴욕타임스 찰스 더힉(CHARLES DUHIGG) 기자는 일요판 매거진용 기사 'How Companies Learn Your Secrets'를 온라인에 먼저 올렸다. 기업이 어떻게 소비자가 모르는 사이 개인정보를 이용해 마케팅을 하는지를 대형 유통업체인 타깃(Target)의 사례로 보여준 기사였다. 일요판 잡지용 기사인 걸 감안해도 정말 장문의 기사(노트북에서 기사를 클릭하면 9쪽) 였다.
기업이 비밀리에 고객정보를 어떻게 모으고 분석해 마케팅에 활용하는가를 다룬 이 기사에는 타깃이 고객 ID를 만들어 관리하면서 데이터 분석과 마케팅을 해온 사례가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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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더힉 기자가 쓴 기사(출처: 뉴욕타임스 화면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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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미르 힐 기자의 기사(출처: 포브스 화면 캡쳐) |
미니애폴리스에서 딸을 둔 한 아버지가 타깃 매장을 찾아가 분풀이를 했다. 이유는 이 매장이 10대인 딸 앞으로 자꾸 출산용품 할인쿠폰을 우편으로 보내왔기 때문. 그런데 며칠 뒤 매장 매니저가 사과하려고 전화했더니 아버지가 외려 사과를 했다. 확인해보니 딸이 임신했더라는 것. 타깃이 딸의 쇼핑 정보를 분석해 임신 사실을 파악하고 마케팅에 활용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알기도 전에.
남의 기사 훔쳐가서 장사해먹는다는 욕도 먹은 포브스의 힐 기자가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가 유출된 뒤 기사를 올렸다. 제목은 'The Terrible Irony In The New York Times Not Publishing Its Own 'Innovation Report'.
2년 전 자신이 '타깃' 기사 썼을 때 자신이 욕도 먹었지만, 사실 뉴욕타임스 오리지널 기사가 더 많이 읽히도록 해준 게 자신의 기사였다는 주장도 담았다. 그는 장문으로 길게 쓰는 기사가 있으면 '짧은 요약판 기사'도 따로 써서 올리는 서비스를 하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읽어봤는데, 디지털 미디어 수준 높이려고 고민하는 것도 알겠는데, 아직도 변화를 위한 정신자세가 제대로 안 돼 있다'는 것. 대외비, 내부용 보고서라고는 해도 이미 다른 매체에 넘어가 기사가 나오는 상황인데, 왜 아직도 너희가 만든 보고서를 가지고 기사를 쓰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힐 기자가 그런 말할 자격이 있는지는 별개로, 새겨 들을 대목도 있어 보인다.
'베껴쓰기 저널리즘'에 있어 한국 언론도 상황은 비슷하다. 특종기사는 A 신문이 썼지만, 네이버 뉴스 검색에선 B신문(주로 닷컴)이 베껴쓴 기사가 오히려 시간상 먼저 나오는 식이다. A 신문이 자사 홈페이지에 기사를 띄우자 마자, 아니면 A 신문이 새벽에 배달되자 마자 'A 신문 보도에 따르면'이란 문구를 넣어 거의 토씨만 조금 바꿔 베껴쓴 기사가 B 신문 닷컴 기사로 제작되는 경우다. 특종기사는 A 신문이 쓰고, 온라인 트래픽은 B 신문이 챙기는 셈이다. 신문사 홈페이지를 방문해 기사를 읽는 사람보다 포털 뉴스 사이트에서 기사를 읽는 사람이 훨씬 많아서 생기는 현상이기도 하겠다.
뉴욕타임스가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베껴쓰기 저널리즘'에 적응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인식하는 게 한편으론 서글프다. 그렇다고 혁신보고서에 '뉴욕타임스도 베껴쓰기에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는 없다. 자존심도 중요하겠지만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뉴욕타임스에겐 온라인 기사 유료화(페이월: 부분 유료화)의 성공에 기여해준 충성도 높은 독자들이 있으니 새로운 시도를 할 기반이 튼튼한 셈이다. 이런게 저력이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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