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ne 12, 2014

뉴욕타임스 '프리미엄 서비스', 그리고 '프리미엄 조선'

개인적으로 뉴스의 뒷 얘기만큼 재미있는 얘기도 없다. '문창극 후보자가 총리 후보자가 된 진짜 이유', 이런 제목의 기사라면 당장 혹하지 않을까. 기자의 '취재 후기'는 기자칼럼 등의 형식으로 지면(또는 온라인)에 등장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편집국(보도국) 내부(사안에 따라 해당 부서 내부)에서만 알 수 있다. 뉴욕타임스가 올해 4월 2일부터 시작한 프리미엄 서비스 '타임스 프리미어(Times Premier)'엔 이런 뉴스의 뒷 얘기가 대표상품으로 포함돼 있다. 이른바 프리미엄 구독자에게만 특별히 제공하는 서비스다.

타임스 프리미어는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유료 서비스 가운데 가장 비싸다. 처음 4주 동안엔 99센트이지만, 그 후엔 1주에 11달러 25센트. 대략 4주를 한 달로 치자면 한달 45달러.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50쪽)에서 프리미엄 구독자(premium subscriber)에게 제공한다고 짧게 언급한 서비스다. 타임스 프리미어 회원이 되면 뉴욕타임스 사이트가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를 100% 이용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 웹사이트 화면 캡쳐

특별할인이 없는 일반 가정의 종이신문 구독료는 1주일 8달러45센트. 한달이면 33달러80센트다. 종이신문 구독자가 한달 10달러를 더 내면 타임스 프리미어 서비스를 모두 이용하게 해준다.

혁신보고서에도 잘 나타나 있지만 뉴욕타임스가 사활을 걸고 있는 부문이 디지털 구독자 확대다. 4월 24일 뉴욕타임스 기사

 올해 1/4분기(1~3뉴욕타임스의 디지털 구독 수입은 1 전보다 13.6% 증가한 4000 달러. 1/4분기 추가된 디지털 구독자(digital-only subscriber) 39000으로 전체 디지털 구독자는 799000명이었다.

다음은 뉴욕타임스 보도자료에 포함된 내용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6개월 동안의 뉴욕타임스 실적. '종이신문+디지털신문' 발행부수(circulation)는 월~금요일 214만9012부, 일요판 251만7307부. 월~금 부수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5% 증가했고, 일요판은 8% 증가했는데, 이는 디지털 구독자 증가에 힘입은 것이었다. 월~금 디지털 발행부수는 134만1945부, 일요판 130만106부각각 18%, 22% 증가했다. 반면 종이신문 발행부수는 월~금 68만905부, 일요판 121만7201부각각 7%, 3% 감소했다.

뉴욕타임스가 지난 4월 하루 주요 기사 40건을 제공하는 'NYT NOW'(한달 8달러)와 더불어 타임스 프리미어 서비스를 시작한 데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국내에선 매일경제, 한국경제에 이어 종합일간지로는 조선일보가 처음으로 프리미엄 서비스 '프리미엄 조선'을 지난해 시작했다. 지난 9일엔 프리미엄 조선 강화 차원에서 '기자에게 물어보세요' 서비스를 도입했다. 프리미엄 조선은 외부 필자 기고를 포함해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기자들이 뉴스의 뒷얘기를 쓰는 '뉴스 인사이드' 코너다. '기자에게 물어보세요'는 지난해 11월 시작한 이 뉴스 인사이드를 보완하는 성격으로 보인다. 프리미엄 조선 서비스에 대해선 한국경제 최진순 기자의 분석을 참고.

타임스 프리미어와 달리 프리미엄 조선은 이름과 연락처 정보를 제공하면서 온라인 회원가입을 하면 유료독자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일단은 개인정보 제공을 구독료로 받는다고 해야할까.





조선일보가 인력과 시간, 돈을 투입해 프리미엄 조선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종이신문 구독자의 감소 추세다.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로 인해 대중적으로 알려졌지만, 세계 언론환경은 디지털 매체의 성장과 종이신문 산업의 쇠퇴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국내 종합일간지 유료부수 변화도 이런 추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최근 몇년 새 이른바 10대 종합일간지 유료부수는 전체적으로 빠르게 줄고 있다(문화일보는 예외적이다). 유료부수가 가장 많은 조선일보만 해도 3년 사이 약 7%(9만8308부)가 감소했다. 



최근 종합일간지 유료부수 변동


2010
2012
2013
경향신문
200,158
176,202
N/A
국민일보
211,632
147,848
140,140
동아일보
866,665
753,237
707,346
문화일보
133,430
140,359
146,898
서울신문
116,541
110,195
107,937
세계일보
65,849
60,529
N/A
조선일보
1,392,547
1,325,555
1,294,239
중앙일보
983,049
916,770
811,083
한겨레신문
225,102
210,098
N/A
한국일보
203,752
168,378
158,848

*한국ABC 협회 자료를 토대로 정리.


조선일보가 프리미엄 조선 서비스를 강화해 얻으려는 당장의 목표는 뉴욕타임스의 그것과는 달라 보인다. 뉴욕타임스가 디지털 구독자(digital-only subscriber) 확대에 첫번째 목표를 두고 있다면 조선일보의 경우 기존 종이신문 독자의 '디지털 구독자 전환'을 유인하는 차원이 강한 것으로 읽혀서다. 프리미엄 서비스 회원 가입을 유도해 데이터를 확보한 뒤, 향후 디지털 구독자 전환 작업에 활용하는 단계를 밟을 가능성이다. 한국경제 최진순 기자는 "조선일보는 새로운 온라인 이용자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종이신문 구독자에게 혜택을 주려는 목표를 밝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가 온라인 기사 유료화(페이월: 부분 유료화)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에선 아직 이렇다할 성공사례가 눈에 띄지 않는다. 온라인 기사 유료화에 대해선 한겨레 문현숙 선임기자의 기사를 참고.

최근 언론계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뉴욕타임스와 조선일보의 프리미엄 서비스 얘기가 오갔다. 전망에 대해선 차이가 있었지만 '관건은 돈 내고 볼 만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느냐가 아니겠느냐'는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한달 45달러 구독료를 내고도 뉴욕타임스 프리미엄 서비스를 이용할 독자는 적지 않겠지만, 국내 언론 가운데 그만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매체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얘기도 나왔다. 


200개가 넘는 국가에서 하루 800만명 이상이 온라인으로 방문하는 곳이 뉴욕타임스 사이트다. 최고 품질의 기사와 정보를 제공한다고 자부하는 뉴욕타임스가 올해 1/4분기 추가한 디지털 구독자가 3만9000명. 매체에 대한 호오(好惡)와 별개로 동종 업계에서 '조선일보는 변화에 빠르게 대응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조선일보는 종이신문 구독자의 몇 %를 디지털 구독자로 데려올 수 있을까. 프리미엄 조선은 얼마나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Tuesday, June 3, 2014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와 '베껴쓰기 저널리즘'

일본식 용어가 아직도 적잖이 남아있는 한국 언론계 은어 중에 다른 언론 기사를 살짝 고쳐쓰는 행태를 가리키는 '우라까이(베껴쓰기)'란 말이 있다. 갑자기 이 말이 떠오른 건 앞서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를 정리할 때였다. 

뉴욕타임스가 공들여 제작한 '넬슨 만델라 부음' 기사 시리즈보다 뉴욕타임스 기사를 인용해 쓴 허핑턴포스트 기사가 훨씬 더 많은 페이지뷰를 만드는 상황을 언급한 부분에서 '디지털 소매치기(digital pick-pocket)'란 말이 등장한다. 허핑턴포스트의 한 간부가 "이런 게 자랑스럽진 않지만 이게 너희가 해야할 경쟁이다. 너희는 (남들이) 너희 기사를 가지고 더 나은 제목을 붙이고 소셜미디어로 더 홍보해서 '디지털 소매치기' 하는 걸 막아야 한다"고 말한 부분이다.(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34쪽) 
베껴쓴 기사에 당하지 않으려면 너희가 만든 오리지널 기사 홍보 제대로 해서 장사 잘 하라는 얘기였다.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팀은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 우리가 더 적극 기사를 알리는 노력을 하는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 디지털 미디어에선 얼마나 깊이 있는 기사를 쓰는지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게 얼마나 마케팅을 잘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내부 구성원들에게 말하려 한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제 아무리 대단한 단독기사를 내놔도, 독자를 끌어들이는 홍보력과 기술력이 앞선 디지털 미디어가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이라고 인용하면서 훨씬 섹시한 제목을 붙이고, 요점을 정리해 베껴쓰면, 더 많은 독자가 읽는 기사는 '베껴쓴 기사'가 되기 때문에. 

그런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2년 전 뉴욕타임스가 게재한 '고객정보' 관련 기사였다.


2012년 2월 16일, 뉴욕타임스 찰스 더힉() 기자는 일요판 매거진용 기사 'How Companies Learn Your Secrets'를 온라인에 먼저 올렸다. 기업이 어떻게 소비자가 모르는 사이 개인정보를 이용해 마케팅을 하는지를 대형 유통업체인 타깃(Target)의 사례로 보여준 기사였다. 일요판 잡지용 기사인 걸 감안해도 정말 장문의 기사(노트북에서 기사를 클릭하면 9쪽) 였다.

기업이 비밀리에 고객정보를 어떻게 모으고 분석해 마케팅에 활용하는가를 다룬 이 기사에는 타깃이 고객 ID를 만들어 관리하면서 데이터 분석과 마케팅을 해온 사례가 들어있었다.



찰스 더힉 기자가 쓴 기사(출처: 뉴욕타임스 화면 캡쳐)


그런데 이런 스토리가 널리 알려진 건 뉴욕타임스 기사를 통해서가 아니었다. 더힉 기자의 기사가 온라인에 게재되고 몇시간 뒤, 소셜미디어에 다른 매체의 기사 한 건이 떴다. 제목은 'How Target Figured Out A Teen Girl Was Pregnant Before Her Father Did'포브스(Forbes)의 소셜미디어팀 담당인 캐시미르 힐() 기자가 뉴욕타임스 더힉 기자의 오리지널 기사 내용을 짧게 정리해 올린 기사였다. 


캐시미르 힐 기자의 기사(출처: 포브스 화면 캡쳐)

미니애폴리스에서 딸을 둔 한 아버지가 타깃 매장을 찾아가 분풀이를 했다. 이유는 이 매장이 10대인 딸 앞으로 자꾸 출산용품 할인쿠폰을 우편으로 보내왔기 때문. 그런데 며칠 뒤 매장 매니저가 사과하려고 전화했더니 아버지가 외려 사과를 했다. 확인해보니 딸이 임신했더라는 것. 타깃이 딸의 쇼핑 정보를 분석해 임신 사실을 파악하고 마케팅에 활용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알기도 전에.

페이스북에서 뉴욕타임스 오리지널 기사가 받은 '좋아요'+'공유' 버튼 클릭 수는 대략 1만4000개. 오리지널을 요약한 포브스의 기사가 받은 클릭 수는 1만5000개 이상이었다. 뉴욕타임스 오리지널 기사의 트래픽 거의 대부분이 그 기사를 사실상 베낀 포브스 기사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었다고 한다. 포브스 기사를 읽다가 거기에 언급된 오리지널 기사를 찾아들어가 읽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얘기다. 

남의 기사 훔쳐가서 장사해먹는다는 욕도 먹은 포브스의 힐 기자가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가 유출된 뒤 기사를 올렸다. 제목은 'The Terrible Irony In The New York Times Not Publishing Its Own 'Innovation Report'.

2년 전 자신이 '타깃' 기사 썼을 때 자신이 욕도 먹었지만, 사실 뉴욕타임스 오리지널 기사가 더 많이 읽히도록 해준 게 자신의 기사였다는 주장도 담았다. 그는 장문으로 길게 쓰는 기사가 있으면 '짧은 요약판 기사'도 따로 써서 올리는 서비스를 하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읽어봤는데, 디지털 미디어 수준 높이려고 고민하는 것도 알겠는데, 아직도 변화를 위한 정신자세가 제대로 안 돼 있다'는 것. 대외비, 내부용 보고서라고는 해도 이미 다른 매체에 넘어가 기사가 나오는 상황인데, 왜 아직도 너희가 만든 보고서를 가지고 기사를 쓰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힐 기자가 그런 말할 자격이 있는지는 별개로, 새겨 들을 대목도 있어 보인다.

'베껴쓰기 저널리즘'에 있어 한국 언론도 상황은 비슷하다. 특종기사는 A 신문이 썼지만, 네이버 뉴스 검색에선 B신문(주로 닷컴)이 베껴쓴 기사가 오히려 시간상 먼저 나오는 식이다. A 신문이 자사 홈페이지에 기사를 띄우자 마자, 아니면 A 신문이 새벽에 배달되자 마자 'A 신문 보도에 따르면'이란 문구를 넣어 거의 토씨만 조금 바꿔 베껴쓴 기사가 B 신문 닷컴 기사로 제작되는 경우다. 특종기사는 A 신문이 쓰고, 온라인 트래픽은 B 신문이 챙기는 셈이다. 신문사 홈페이지를 방문해 기사를 읽는 사람보다 포털 뉴스 사이트에서 기사를 읽는 사람이 훨씬 많아서 생기는 현상이기도 하겠다.

뉴욕타임스가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베껴쓰기 저널리즘'에 적응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인식하는 게 한편으론 서글프다. 그렇다고 혁신보고서에 '뉴욕타임스도 베껴쓰기에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는 없다. 자존심도 중요하겠지만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뉴욕타임스에겐 온라인 기사 유료화(페이월: 부분 유료화)의 성공에 기여해준 충성도 높은 독자들이 있으니 새로운 시도를 할 기반이 튼튼한 셈이다. 이런게 저력이겠지 싶다.